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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20:17-23 | 각오해도 어려운 동상이몽

by Kangman 2022. 12. 22.
세 번째 십자가 사역에 대해 예고 직후, 일부 제자들과 그 어머니들은 예수님께 공직을 청탁했다. 예수님은 “기대와 다른 모양이겠지만, 주의 뜻 안에서 감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들은 3년간의 공생애를 통해 초자연적인 능력에 한껏 매료된 나머지, 그 모든 과정의 결론인 십자가 사역의 무게를 느끼지 못했다. 이미 두 차례나 말씀하셨지만, 그 일이 아직 닥치지 않아 체감되지 않은 까닭일까? 그 능력에 초점이 확정되어, 다른 사안에 신경 쓰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그 능력으로 기대하는 결과에 꽂혀, 과정을 등한시했기 때문일까?

이전에는 저들의 미숙함에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으나, 요즘은 ‘육신을 입고 있는 그 어떤 인간이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또한 ‘그러한 이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3년간 함께 해오신 마음은 어떠셨을까?’ 하는 예수님의 어려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게 된다.



‘자기들의 꿈과 미래를 그리며 들떠 있는 제자들’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십자가형을 앞두고 무거움 무게를 느끼고 있는 예수님의 심령은 어땠을까? 이 역시 사명여정의 일부임을 인지하고 있을지라도, 인자이기에 감내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심령의 어려움을 감내하며 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던 예수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내 뒤를 좇는 것은, 네 마음과 같지 않은 영혼을 위해 애쓰고 섬기며 기다려 주는 것이다. 각오하고 시작한 관계 중에도 상처와 아픔을 피할 수 없으며, 받은 은혜를 돌아보며 첫 마음을 유지해야 갈 수 있다. 그에 대한 경각심을 주기 위해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한 것이다. 힘들고 어려운 과정인 점도 사실이지만, 그에 대한 복된 가치도 사실이고,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의 실시간 지원과 끝까지 멈추지 않을 나의 중도도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