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신의(압살롬 vs 잇대): 삼하 15-16장
압살롬은 친동생이 암논에게 겁탈당했다는 사실도 화가 났지만, 그 사실을 알고도 왕으로서 어떤 대응을 하지 않는 아버지의 비뚤어진 편애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친동생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지만, 차기 왕을 죽인 만큼 그에 대한 벌이라고 생각하고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7년이 지나 힘겹게 찾아갔지만, 아버지의 반응은 형식적인 인사만 할 뿐이었다. 극악무도한 잘못을 저지른 중범죄인데도, 그에 마땅한 벌을 받은 것뿐인데도 암논에 대한 슬픔만 있을 뿐, 겁탈당했던 친동생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나 7년이나 생이별을 했던 자신에 대한 마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결국, 복수심에 목적 달성을 위해 섬기지도 않던 하나님을 이용해서 거사를 시작하게 되지만, 실패하게 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잇대는 다윗으로 인해 망명한 이방인 군인이었다. 처음에는 몰랐어도 이스라엘에서 거주하면서 이방인에 대한 인식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윗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깊이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자신과 600명의 군사들과 가족들의 생명을 담보로, 위기에 처한 다윗과의 신의를 지키는 모습은 그 감사의 마음이 얼마나 깊었는지 가늠케 한다.
더 나아가 이방인으로 다른 신을 섬겨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다윗을 두고 맹세할 군인이라면 정말 충신의 끝판왕이라는 타이틀도 아깝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잇대의 군대는 다윗의 군대가 되어, 반란군을 제압하여 이스라엘의 영웅으로 굳건히 서게 된다.
누구라도 압살롬 입장이라면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은 상태였던 만큼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자기 목적 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도 없고, 정상참작의 여지도 없다. 반면 이방인으로서 다윗의 은혜를 알고, 그에 따른 신의를 넘어 하나님에 대한 맹세까지 하며, 결국 반란 제압의 영웅이 되는 잇대의 모습은 정말 대조적이다.
생명을 비롯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부분의 것은 내 노력만으로 이룬 것은 아니다. 넓게 보면 주께로부터 온 것이며, 가까이 보면 누군가의 배려, 도움, 협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때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게 될 때에도, 크고 작은 그림을 생각하며 판단하고 결정하고 행동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