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악독했지만, 노아의 가족은 방주제작과 땅 위의 생물들을 방주에 태우는 엄청난 수고와 애씀으로 약속에 따라 구원을 받았다. 또한 1년의 방주생활 이후 땅을 밟자마자 하나님 앞에 번제 드리는 모습 또한 신앙의 선배로서 따를만 하다. 하지만 술에 취해 아들들에게 부끄러움을 보이고, 수치심에 취해 손자까지 저주하는 모습을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도움을 주거나 은혜를 베푼 자보다, 도움을 받거나 은혜를 입은 이가 더 잊는 것은 어디에서나 동일한 것 같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행위로 땅 위의 모든 생물이 진멸 당했고 노아의 가족들만 살아남았지만, 노아는 술에 취하고 수치심에 취해 상반된 모습을 보이게 된다. 술이나 수치심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취했다면 어땠을까? 아들들에게 부끄러운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는 실수로 부끄러움을 보였더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아들들에게 본이 되지 못함에 사과하고, 손자들에게 축복하며 선례를 밟지 않게 해달라고 간구 했을 것이다.

이러한 부족한 노아를 향해 성경은 의인, 하나님과의 동행자, 완전한 자로 평가한다. 어떤 기준과 근거로 평가하기에 상식적으로 대조적인 평가가 내려진 것일까? 이는 성경의 평가기준이 '하나님의 은혜 입음 여부'이기 때문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손자까지 저주하는 악인이었으나 의인이 될 수 있었고, 술과 수치심에 취했으나 하나님과 동행 할 수 있었으며, 불완전했으나 완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노아시대에는 취할 수 있는 요소가 술 외에 많지 않았지만, 수 천년이 지난 이 시대에는 취할 요소가 곳곳에 있다. 본능, 문화, 주변 사람들, 사회적 요구 등에 이끌려 취하기 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취해 당장 불편해도 후회하지 않을 판단과 결정을 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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